신사(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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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질문이라는게 하기 힘들었던 적이 있다. 질문이 어려워지니 반대로 질문을 받는 것도 힘들었다. 당시의 내 이야기를 조금 더 붙여보면 운이 좋게도 알파고가 한국을 휩쓸고 가는 시기에 IT기업에 있었고 R&D부서의 기획자로 일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관심있게 지켜봤던 만큼 최대한 빨리 관련 논문과 자료들을 학습하고 아이디어를 짜냈다. 모든 상급자가 자신은 어렵고 본인들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싫다고 거부했던 것을 회사 임원이 한번 해보라고 해서 혼자 일주일 간 작업해서 지원했고 정말 또 운이 좋게도 최종 선정되어 제법 큰 돈의 정부 지원을 받게 되었다. 막상 사업을 진행하려니 사업계획서에 적힌 사업 목표를 2년 동안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결국 내가 전부 리드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 나이가 만으로 29살이고 군대까지 다녀와서 년차도 얼마 안됐으니 모든 챌린지에 부담을 느끼기 십상이었다. 

 

다른 사업부에서 입에 담기 어려울 만큼 시기와 험담이 오갔고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미는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외로운 늑대처럼 어떻게든 버티고 사업의 결과로 보여주겠다는 결심은 점점 나를 고립시켰고 결과적으로 사업과 관련해서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이게 나를 질문과 멀어지게 했다. 나의 가설의 전제조건이 틀렸을 때 모든 가설이 무너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고 질문 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더 큰 실패가 도사리고 있음에도 쉽게 전제조건들을 검증하려고 하지 않았다. 틀려서는 안됐으니까 말이다.

 

결국 압박감에 몸이 짓눌려 버틸 수 없을만큼이 되고 나서 나는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사업에 대한 불확실이나 무책임함보다 건강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심한 두통과 구토 증세로 일하다가 화장실, 응급실을 전전했고 가족들과 시간을 단 몇 분도 보내지 못하는 날이 반복됐다. 태어난 아이에게 이게 무슨 짓인가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런 부정적 감정에 내 제품에 대한 감정까지 메마르자 더 내 마음이 동하는 제품을 운영하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어쩌면 리셋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2번의 이직이 더 있었다. 점점 질문에 강해졌고 나는 나를 내려놓고 팀과 제품이 강해지게 하는 것에 집중했다. 예전에 정재승 교수님 수업에서 쿨하게 사과하라라는 책을 소개하며 사과하지 못하는 사람과 사과를 해내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과는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게는 질문이 그 영역에 해당된다고 느꼈다. 질문을 하고 질문에 답을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고 더 좋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게 돌아오는 동료들의 피드백에서 나는 더 훌륭한 리더가 되어 있었다.

 

점점 내 질문은 제품을 날카롭게, 질문을 받는 이가 더 좋은 답을 낼 수 있게 하는 질문이 되었고 지금 내가 생각하는 답을 확정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지금 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될 수 있게 하는 무기가 되었다. 굳이 아는 척 하거나 나의 얄팍한 지식을 전문가들 앞에서 잘난 듯이 떠들 필요도 없다. 질문 하나로 내 지금의 생각보다 훨씬 좋은 답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난 지식을 쌓아가고 우리가 만드는 결과물은 더 멋지고 훌륭해진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PO에 한정해야 하나 싶었다. 늘 입버릇처럼 나는 PO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경청이라면 그 경청을 만드는 스킬은 질문을 잘 하는 것이라고 해왔기 때문이다. 근데 이건 PO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과 일하는 이 세상의 모든 리더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PO가 리더 중 하나이고 내가 하고 있는 직무이기 때문에 PO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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