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다면 작고 적당히 크다면 큰 지방에 위치한 IT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래도 나름 국책과제를 수행하는 부설연구소를 가지고 있고 R&D를 시작하면서 초기 멤버로 합류해 지금은 연구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IT와 관련된 전공을 가진 것도 아니다. 법학을 전공했고 MBA를 마친 뼛 속까지 철저히 인문, 사회과학 계열이다. 어쩌다보니 관심을 갖게 된 IT가 이젠 직장이 되었고 부족한 과학에 대한 공부를 이름만 말하면 다들 알만한 학교의 유명한 교수님들에게 배우며 두번째 석사를 곧 있으면 마친다.
인공지능을 주로 연구하고 있지만 신규 서비스 기획도 병행하고 있어 하나에 집중하기 보다는 성격대로 난잡하게 이것저것 손을 뻗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다. 사실 나는 욕심만 많고 세상만사에 불만이 가득하다. 그래서 더 많은 걸 갖고 싶어하고 더 많은 걸 하고 싶어한다. 꿈은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인데 이게 그렇게 어려워보이더라.. 그래도 쿨하게 난 할 수 있다고 믿었고 하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학교의 수업 내용도 육아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었다. 바이오 수업 때는 면역체계를 공부하며 아이가 튼튼하게 크기 위해서는 어떤게 필요할지 생각했고, 인지신경과학때는 아이의 정서와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교육 방식이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하는 연구들도 육아와 관련되거나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것들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의 학습과정을 보면서 우리 아이의 학습 과정을 떠올리기도 했고 아이가 하나씩 배워나가는 것을 보며 인공지능이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만 쓰니 편해보이지 육아와 프로그래밍을 둘 다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인공지능이 훨씬 말도 잘 듣고 학습시키기 편하다. 아이는 본인 마음대로 학습을 하려고 하며 경험을 한다. 더 엄밀히 말해 인공지능에게 정책을 정해주듯 '이건 하지마!', '이럴 땐 이렇게 해!', '이건 위험해!' 라고 해도 아이들은 일단 도전한다. 오히려 억지로 말리고 뜯어내면 더 소리 지르며 반항한다. 더욱 재밌는건 그렇게 얻을 보상이 부정적인 경험만 줄 것이라고 말을 해줘도 반복해서 학습하려고 하고 부정적인 경험을 하고도 비슷한 경험에 겁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게 인간을 만드는 어떤 위대한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냥 어떤 형태로든 대단하다고 느껴지긴 한다.
워낙 망측한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라 아이의 학습과정을 보면서 보상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자발적 행동에 적용되는 효과의 법칙에 있어 긍정적 경험을 했을 때와 부정적 경험을 했을 때 동물은 그 반복적인 행동 패턴에 다른 양상을 가져가게 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생략된 것이 경험에 대한 보상을 어딘가에 저장하고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뇌 과학으로 설명하자면 시냅스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게 되겠지만 이는 차치하고서 굉장히 흥미로웠던 것이 긍정과 부정을 둘로 나누어 말한다는 것이다. 그럼 그다지 보상이 있지 않아 명백하게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단계에 속하는 경험의 경우 그것을 경험한 인간은 그 행위에 대해 어떻다고 저장할까? 사실 제일 아이러니한게 인간에게는 '그냥~' 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바이너리로 표현되는 0과 1이 아닌 그렇다고 0.5도 아닌 그 모호한 어딘가에 수를 두고 평가를 한다. 심지어 비슷한 수준의 다른 두 요소에 대해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다는 상대평가도 가능하다.
어떻게 하다보니까 뇌의 학습에 관한 과정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박해정 교수의 Review Summary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예전에 인터넷에서 찾은 정하웅 교수님의 복잡계 네트워크 강의가 생각났다. 근데 사실 생각해보면 사회에서 발생하는 네트워크와 상호작용에 있어 결국 그 사소한 뒷담화 조차도 누군가의 평판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한다는 보상이 명확하고, 뇌 역시 학습된 결론을 끌어내기 위한다는 어떤 보상과 목적이 뚜렷하다. 근데 여기에는 어떤 긍정적인, 부정적인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일단 끄집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보상이 주어지고 경로를 만들어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치므로 내가 가볍게 접근해왔던 인공신경망의 구조적인 것과는 약간의 미묘한 온도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18을 반복하며 키우는 18개월 딸 아이가 (통증이 없고) 부정적인 경험 뿐이었던 어떤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동하면서 얻는게 무엇이고 왜 저렇게까지 고집을 부릴까에 대한 고민이 조금은 풀린 것 같다.
아직 고증이 된 것은 전혀 없지만 결국 아이의 뇌 속에서는 부정적 경험 조차도 이 전의 골목길 수준이었던 뇌의 길을 보다 더 오래 각인시키고 마치 무의식 중에도 아는 '1+1=2'처럼 만들기 위한 과정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뇌는 이 아이가 지금 이유식을 다 쏟고 바닥에 뿌리면서 졸고 있는 모습이 이해가 안간다...) 그리고 이렇게 무식하게 어렵게 생각하고 복잡하게 모르는 분야에 접근하면서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다보니 너무 어렵고 철학적인 문제에 봉착해서 받는 스트레스가 육아보다 더 힘들어 위안이 되긴 했다. 그냥 난 이렇게 육아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이겨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이런 망측한 글을 쓰는 것 자체도 육아 스트레스에 대한 내 나름대로 해소 아닐까 싶다.. 결론은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게 중요하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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