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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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나의 성격유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목적이 뚜렷한 업무 환경에서는 분명히 존재하는 위험한 사람 유형이 있다. 모두에게 공통적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아마 우리 주변에 흔한 유형인 사람이라 그들끼리는 아무 불편함이 없기도 하다.
 
https://youtu.be/nLq-y1sXskE?si=Yfe_VSuiNtZTOtXq

 
포괄적이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유형은 일론 머스크가 말한 냉소(Cynic)적인 보다도 더 마이크로하다. 냉소적이면서 남의 행동을 평가하기 위해 쉽게 대화의 주제를 바꾸는 사람이다. 맥락과 무관하거나 긴 맥락의 하나를 짚고 이야기의 본질적인 것을 벗어나는 협의적인 주제에 매몰되어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사람이다.
 
"내가 요즘 A라는 문제가 있어. 그래서 B를 해보려고 해. 근데 B를 하려고 보니 C에서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아. 만약 이게 성립한다면 B에도 좋을 수도 안좋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너가 C와 관련된 일을 해서 찾아왔어. B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글쎄 B를 왜 해?"
"내 기준에서의 이유는 A이긴 한데, 나는 C의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일이기도 해서 B에 대해 궁금했던 거야. 그러니까 결국은 이 대화에서는 C라고 생각해보자"
"난 A말고 A 앞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A를 왜 해결해야 하는지 모르겠거든"
"응? A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거야?"
"아니 문제는 맞는데 나는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쓰기 편하게 반말로 작성했으나 직장에서 이와 같은 대화를 하다보면 내가 이 사람의 의견을 듣기 위해 어느정도까지의 맥락을 공유해야 하는지 망설여진다. 그리곤 A를 하는 것 자체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여기저기 issue raising을 하고 문제라고 한다. 협의되지 않았고 공유되지 않는다며 조직 문화의 문제로 키우기도 한다. 그리곤 애자일('Agile') 하지 않다거나 애자일은 실패했다고 말한다. 
 
 

 (참고로 위 영상 중 단일 제품 소유자-single product owner는 po를 리드하고 제품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갖는 단 한 사람을 뜻한다.)

애자일 개발 선언문이 선언된게 2001년이다. 글을 쓰는 지금은 2024년이다. 지금도 애자일이 전부이고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놀랍다. 이미 세상에는 애자일을 넘어서는 것들에 대한 시도들을 무수히 많이 해왔고, 어떻게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좋은지 우리에게 잘 맞는지도 알려져있다. 청색으로 일하는게 잘 맞고 이미 청색으로 일하고 있는 조직에서 알아서 하기 때문에 녹색으로 가야한다며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이색적이다.
 
다시 아까의 대화로 돌아가서 내게 말을 하는 상대방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내게 얻고 싶은 정보와 하고 싶은 대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보다는 문장과 단어의 맥락을 전부 이해하고 공감되지 않으면 나는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의 자율성을 극단적으로 낮추곤 한다. 특히 이런 이들이 의사결정 권한이 커질 수록 더 그렇다. 이들은 결국 정보의 공유에 대해 요구하면서 자신의 정보는 충분히 공유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업무를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러면서 본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뭐가 어떠냐며 자신의 기준에서 모든 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수긍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설파한다. 그래서 잘 보면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지만 경청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맥락의 깊이를 이해했다기 보다 시계를 돌려가며 왜 라는 질문만 반복할 뿐이다. 근데 이 왜라는 질문에 있어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에 대한게 아니라 현상이나 상황, 결정에 대해서 왜라고 묻기만 한다.
 
예를 들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냥 B를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C에 대해서도 생각했어?'라는 질문과 'B를 왜 해?'는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조언을 하고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정상적인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거나 스스로가 일을 컨펌해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D라는 방법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B였어?' 라는 의미의 질문일 수도 있기에 보통은 다음 대화로 넘어간다. 그 대화에서 A에 대해 다시 캐묻고 정작 대화는 실체 없는 대화만 나누다 끝난다. 그래서 나는 왜에 대해 묻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왜에 대해 묻는 것이 똑똑한 왜와 바보같은 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똑똑한 왜는 내가 알고 싶은게 명확하고 설명하는 이에게도 목적이 분명해서 명쾌한 답을 줄 수 있거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왜이다. 바보같은 왜는 내가 알고 싶은게 막연하고 설명하는 이에게도 질문자의 목적이 분명치 않아 명쾌하게 답을 하기 어렵고 설명해야 하는 것의 범주가 너무 크고, 아무 실익이 없는 대화라고 생각되어 무엇부터 설명해야 하는지 막연하게 만드는 왜이다. (물론 왜 라는 질문을 던지는 자체는 침묵보다 훌륭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3smc7jbUPiE

 
 
그래서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은 사람이다.
- 당연한게 많고,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중심적이고 냉소적이다.)
- 대화의 주제를 자주 바꾸어 잘못으로 만들고 가르치려는 사람 (잘못을 찾아 논점을 벗어나 폭력하고 우위를 가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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