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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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취미로 하기 시작한게 2006년 여름부터인 것 같다. 당시에는 카메라 브랜드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지금도 내 모니터 앞에 있는 후지 파인픽스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 한 장 때문에 시작했다. '후지 카메라가 색감이 좋지' 라는 사진 동아리 동기 형의 말에 어쩐지 사진에 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도 아웃포커싱이란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돈지x이 시작되었다. 당시에 하이엔드 카메라 라는게 있었는데 그때 소니에서 출시한 카메라는 아웃포커싱이 된다며 광고를 엄청나게 했다. 구매하고 몇 번 써보고는 결국 DSLR로 넘어갔다. 그리고 깊이 빠지기 시작하며 나는 거리 사진에 매료되었고, 더 좋은 사진들을 찾아다니고 그들의 사진은 어떻게 찍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사진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은 전무하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사진을 보며 왜 좋다고 느꼈을지 구도를 공부하고 더 좋은 사진들을 보며 어떻게 찍었을지 탐구하며 쌓여온 간접 경험들이 전부다. FM2를 들고 다니던 동아리 형과 출사를 다니며 정직한 사진에 대해 배웠고 필름에 대한 매력도 느끼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더 잘 남겨주고 싶다는 핑계로 오막포를 구매했고 디지털 풀프레임을 경험하며 새로운 세상에 빠져들었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콘탁스 50mm F1.7 렌즈를 활용하던 야시카 FX-7(SLR)을 오막포와 들고다니자니 유모차 끌고 다니랴 운전하랴 장비 챙기랴 너무 정신없었다. 자연스럽게 필름은 내 취미였던 지극히 내 주변에서 발견되는 사소한 것들을 찍는 장비가 되었고, 오막포는 가족을 더 잘 찍어주는 녀석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야시카의 크기가 부담됐는데 마침 콘탁스 T2가 좋은 매물로 나온 것이었다. T3는 가격이 부담되던 차에 T2를 구매했고 디지털백까지 달린 T2는 나와 짝꿍이 되어 항상 붙어 다녔다.

 

물론 이런 장비 교체 와중에도 내 마음 속에는 브레송의 카메라 라이카가 멤돌았다. 바르낙까진 자신 없었고, 라이카 M6와 보이그랜더 35mm만 되어도 만족하며 쓰겠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가격에 절망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반복하던 때 이젠 오막포가 너무 부담스러워졌다. 아이 둘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데 목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오막포와 신계륵은 가뜩이나 일자목으로 고생하는 나를 더 불편하게 했다. 첫째의 유치원 졸업식도, 첫번째 운동회도 함께 한 오막포가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 같았다. 부담스러운 사진생활은 이제 내 체력 상 사치라고 생각되어 오막포를 팔고 GR3로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10주년 기념으로 일본 여행을 가자고 했다. 어차피 GR3와 포지션이 겹치던 T2를 판매하려고 보니 가격이 이전보다 조금 더 올라있었다. 바로 판매하고, GR3를 구매했다. GR3는 워낙 리셀 가격이 비싸서 인터넷 준비 타고 있다가 다이어리 에디션이 소량 풀리자마자 구매했다. (그 다음에 진행된 후기 작성에 선정되어 펜이랑 노트도 받았는데 개봉도 안했다.) 이제 오막포와 신계륵을 판매하고 야시카와 예전부터 수집욕으로 가지고 있던 보이그랜더 VITO CL도 판매했다. 굴러다니던 홀가까지 판매한 돈으로 일본 여행 예약을 시작했다. 일단 극단적으로 떨어지는 엔화가치를 고려해 미리 환전을 해두었고 일본 현지사이트로 예약까지 마치고 나니 우리가 보태는 경비까지 하면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어쩐지 필름 사진들이 갑자기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아내도 내심 미안했던지 아내도 내게 결혼 10주년이기도 하니 원하던 카메라로 바꾸어 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다. M11은 너무 비쌌고, 오래 전 나의 로망이던 M6를 찾아보았다. 마침 또 반도카메라에 올라온 훌륭한 매물을 보고 잔뜩 기대하며 점심시간을 이용해 충무로로 달렸다. 안경을 끼고 35mm 화각을 좋아하는 편이라 0.58 배율이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워낙 구하기 힘드니 0.72 배율로 하는 것으로 하고 바로 위탁 매물을 고이 모셔왔다. (생각해보니 결국 돈을 더 썼다..)

 

이제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내게 라이카 M은 어떤 카메라였을까? 여전히 난 M6로 스트릿보다는 아이들 사진을 더 많이 찍고 있다. 필름 가격까지 감안하다보니 더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담는게 강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디지털 M을 쓰며 LFI에 선정되기 위해 스스로 챌린지를 하는 분을 보거나 같은 장소에서 수백장을 찍어보는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35mm 렌즈를 마운트하면 내가 예상한 프레임과 달라 걱정하는 것과 달리 크롭하면 된다고 말하는 분들을 보면 또 부럽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과정에 있어서는 극단적인 수동모드가 내게 더 큰 재미를 선사하는 것 같다. 어쨌든 더 좋은 사진을 건질 확률이 비교적 낮지만 스냅머신으로는 GR3가 있기도 하고, 꼭 디지털 M이나 Q를 가져야 할 만큼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GR3로 아이들 인물 사진을 찍는 것은 아쉬울 때가 많지만..)

 

공간이 바뀔 때마다 미리 어느정도 조리개와 셔속을 맞춰두고, 어떤 곳에 시선을 두고, 목측으로 거리를 잡고, 뷰파인더를 보고 필름 어드벤스 레버를 감는다. 불이 들어온 노출계를 보며 오버가 좋을지 언더가 좋을지 고민하고 초점을 다시 확인하고 셔터를 누르는 사진 찍는 과정과 필름을 리와인딩하고 현상소에 가서 내 손으로 내 연락처를 적고 돈을 지불하고 필름을 맡기는, 그리고 메일을 열고 압축이 풀리길 기다리는 짜릿함은 대체 불가능한 경험이긴 하다. 이미 이 맛에 빠져버린 내가 M보다 더 내게 안성맞춤인 경험을 만날 수 있을까 싶다. 노출계 앱까지 사서 카메라 노출계에 대해 공부했던 그 비용을 이미 들인 녀석이라 남의 손을 여럿 타고 왔어도 이젠 내 손에 맞춰지고 있다. M은 그런 녀석이다. 비교도 안되는 시간과 노력, 공부가 들어가야 원하는 사진을 한롤에 몇 장씩 선물처럼 가져다 주기 시작한다. 

 

첫째에게 처음 자전거를 가르쳐준 날 - Leica M6, Potra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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