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SinSa)
어릴 적 나는,

나는 사립초등학교를 다녔고, 사교육의 메카 대치키즈로 자랐다. 사립초등학교를 다니던 저학년 때에는 7시 15분에 버스를 타야 했었고, 부모님보다 먼저 준비해서 집을 나섰다. 대치동으로 옮기며 학교도 국공립으로 옮겼는데, 아침 시간이 줄어든 만큼 오후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고 학원을 다녔다. 애초에 돈이 많았다고 하기엔 사립초도 운이 좋게 추첨이 돼서 들어갔고, 당시 우리 집은 반지하에 살았다. 그저 어머니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으셨다. 대치동을 가서도 좋은 집에 넉넉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냥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고, 가끔 일탈 아닌 일탈로 PC방을 갈 뿐 순진하게 어른이 되어버렸다. 대치동은 정시에 몰빵하다 싶이 했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지기 시작했다. 화목한 가족은 어린 시절의 추억 같은 소리가 되었고 모종의 이유로 가세가 기울자 내겐 성적도, 기회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대학 등록금이 집 한 채라고 비교될 만큼 등록금이 비싸졌었다. 그래서 사립 대학교를 꿈꾸긴 어려웠고 높아질 대로 높아진 내 눈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학교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처럼 재수를 하고 싶었다. 재수하는 것도 돈이 많이 들어가니 중국으로 유학을 가는 걸 선택했다. 해외는 9월 학기이니 반수하는 셈이었고, 입학 시험은 수능 공부를 했던 것들이 있어서 개황이라고 불리는 중국 역사 시험만 아니면 그럭저럭 해볼만 했다.

 

제법 명성이 있는 학교에서 꽤나 어렵다는 학문을 전공으로 하던 내가 오랜만에 한국에 오자마자 나의 대학 간판은 커리어의 시작이 될 수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간판들이 모여 그 사람의 후광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한국 사회만 그랬던 것은 아닌데 그땐 한국 사회가 그렇다고 생각했다. 철 없던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편입을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칼을 뽑았으면 휘둘러는 보자는 마음으로.. 그때는 없었던 그릿(GRIT)을 외치며 버텼다. 군대를 다녀오니 이 벽은 더욱 탄탄해지고 있었다. 내가 노크해볼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조차 까맣게 잊어가고 있었다. 주변에 창업을 했던 친구들을 보며 IT산업이 얼마나 큰 기회의 땅인지 체감했다. 마케팅과 경영, 그리고 한국어로 지식을 쌓는 것에 대한 로망 아닌 로망이 남아있던 나는 지방에서 MBA를 하게 됐고, 그 지역의 웹 에이전시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관심 분야였던 만큼 금방 승승장구 했었는데 회사 안에서 실적을 내고 명함만 달라졌을 뿐 내가 원하는 성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성장에 대한 욕구가 커지자,

누군가 개인의 성장 곡선이 회사의 성장 곡선보다 가파르다고 느껴질 때가 떠날 때라고 했던가.. 나도 이직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직 보다는 애정을 갖고 있는 이 회사가 성장하길 더 바랐던 것도 있었는지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밌다. 그 회사의 오너는 내가 우리 제품에 당시 30명 남짓이던 토스를 연결시키고 싶어할 때 우리가 하면 된다면서 반려했다. 왜 우리가 집중할 곳과 전혀 다른 옵셔널한 기능에, 더 잘하는 서비스가 있음에도 이런 일에 힘을 빼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것도 비용절감과 비즈니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후 서초 작은 사무실에 있던 당근마켓 사무실에 놀러갔던 이야기를 했을 때도 매출없는 회사라며 무시했다. 그때도 당연했던 스타트업의 성공 방정식을 완전히 무시했다. 직원은 비싼 옷을 입을 수 없고 자신보다 자산을 많이 가지지 않았다고 믿던, 어느날 외제차를 끌고 온 직원에게 미쳤다는 표현을 서슴치 않던 언행에 회사의 Carrying Capacity를 체감했던 것이다.

 

비전만 바라보고 내가 설레어 무언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에만 집중해 선택한 회사에서는 컬쳐핏이 맞지 않아 거의 바로 나왔고, 갖고 있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곳에 합류하여 2년이 넘게 Product Owner로 성장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성장도 만족감이 높고 재밌고 즐겁지만 이제 곧 40대를 바라보는 내게 지금의 연봉과 내게 남은 이력은 작고 보잘것 없이 느껴진다. 내 커리어의 퀀텀점프는 이 회사에 온전히 기여하고 더 큰 성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누구는 이직 한번에 그 간판을 달아버린다. 커리어의 퀀텀점프도 결국 회사에서 뭔갈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편하니까.. 그리고 그게 내 한계 성장 곡선의 정점에 빨리 닿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고 더 무언갈 해낼 것이라고 믿는건 어쩌면 그렇게 살아왔던 관성대로 선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 무엇인가를 해볼 수 없으니 이젠 포기해야 할 때를 나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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