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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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민학교때 대치동으로 이사를 와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당시 신도시로 불리던 일산으로 이사가서 신생 초등학교를 4회 졸업생으로 졸업하고 중학교 때 다시 대치동으로 이사왔다. 입학과 졸업이 대치동은 아니었지만 초등 6년 동안 가장 오랜 기간을 다녔던 곳이고 중고등학교 모두 대치동에서 보냈다. 이제와서 알게 되는 대치동의 특징이 몇가지 있다. 대치동에 사는 여학생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남녀불균형이 있나보다 생각하고 말았는데 지금도 이 추세는 이어진다. 이제 보니 대치동은 남녀공학을 포함해 여고까지 모두 멀기도 하고 선호하는 학교가 대치동 거주했을 때의 이점이 없는 것도 한 몫 하는 듯 하다. 사실 대치키즈의 기준이 대치동에 사는게 아니라 강남 8학군에 속하면서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닌 아이들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은데, 그 정의가 뭐가 중요할까 싶다. 

 

사실 나도 초등학교 2학년에 대치동으로 전학 온 케이스라서 비교 자체가 잘 안되지만 요즘은 선행 속도가 정말 빠른 듯 하다. 근데 이게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교육 방식도 진화의 진화를 거듭했다는 생각이 더 드는 편이다. 성인이 되고 나니 수능에서 점수를 잘 받기 위한 영어가 아닌 정말 영어를 언어 그 자체로 배워서 내 머리에서 자연스럽게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특히 석사 때 영어로만 수업을 듣고 발표해야 할 때 그 생각이 더 강해졌고, 업무를 하면서 SOTA라고 불리는 기술 논문이나 자료를 찾아 읽을 때면 더 쉽고 빠르게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근데 지금 이곳의 아이들은 영어 유치원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한글은 집에서, 방과 후로, 학원에서 추가적으로 배운다. 한글은 자연스럽게 익혀가면서 영어도 익힌다. 영어권 국가에서 자라는 아이들 보다야 당연히 어휘량은 적겠지만 거의 비등하게 배운다. 점수로 표현되는 영어 레벨은 원서 교과서 기준 초등학교 학년을 표현하는데 초등학교 입학 할 때 아이들의 레벨은 1점 이상이 기본이다. 물론 영어 유치원을 택하지 않고 다른 분야에 더 집중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게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대전에서 서울로 돌아오고 아이들을 학습적으로 잘 키우는 주변 부모들을 보며, 스스로 반성하기도 하고 더 잘 키우고 싶다는 욕심에 가족이 다 함께 웩슬러 검사를 받으러 갔었다. 아이가 천재성이 있다거나 한 것 보다는 방향성을 잡고 싶었던 게 더 컸다. 물론 아이가 어른 퍼즐도 쉽게 맞추기도 하고 수 계산이 빠른 편이어서 내심 조금은 기대했었다. 코로나랍시고 매일 같이 집에서 놀았는데 상위 3%라고 한다. 특히 시공간은 0.1%라고 한다. 다만 처리속도가 평균보다 낮으니 할리갈리 같은 보드게임으로 처리 속도를 늘려보라는 추천을 받았다. 덤덤하게 그렇구나 하면서 나오는데 둘째와 다른 곳에 있던 와이프가 왜 그냥 왔냐며 한마디 하더니 바로 다시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웩슬러 검사 자체를 영재교육원에서 받았긴 해도 내가 아이와 어떻게 공부할지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느라 잊었는데 아이가 영재반에서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걸 잊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내가 아이가 공부하는 걸 보며 가장 만족했던 학원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곳은 다섯살에 들어갈 때 조건이 없는데 6개월 정도 지나면 웩슬러 검사를 보고 특정 비율 이상 나와야 창의수업 같은 영재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워낙 첫째가 다니며 만족했던 곳이라 둘째도 크게 고민없이 다녔는데 검사를 봐야한다는 말에 긴장감이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둘째는 상위 1%가 나와 계속 다닐 수 있게 됐다. 이곳에서는 주로 수학과 과학 위주로 다루는 편인데 과학이라고 하기엔 아이들이 어려서 수학에 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근데 수학 문제를 풀려면 문제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정 수준 이상의 문해력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한글과 언어 능력이 함께 성장하는데,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한글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내가 대치동이 아이들 키우기에 매력적인 이유를 이런 부분에서 느꼈다. 기본적으로 모두가 열심히 하고 몰입하기 때문에 내 아이가 어떤 점이 부족한지, 그리고 부족한게 있을 때 어떤 액션을 할 수 있는지가 명확하다. 그리고 그 액션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기관이 주변에 많다. 즉 아이와 관련해서는 대치동 주변에선 무엇이든 해결 가능하다. 학원에 조금만 일찍 가보면 아이들 모두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책을 읽고 있다.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과 카페에서 같이 공부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무엇인 선행조건인지 모르겠으나 부모도 아이에게 몰입되어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이 앉혀놓고 유튜브 틀어주고 스마트폰 보면서 커피 마시는 부모는 정말 보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부모들도 동네에서 피어프레셔를 받는다. 사교육과 학원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인정하지만 사실 나는 학원을 몇 개씩 돌릴 만큼의 재력이 없어서 약간 비판적인 논리가 내게 모두 적용된다는 생각은 없다. 아이들이 놀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자기들끼리 소꿉놀이도 하고 포켓몬 카드 게임도 하고 놀이터도 돌아다닌다. 물론 그 시간적인 제약은 둔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공부를 해서 얻는 성취감보다 놀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리턴이 빠르기 때문에 더 쉽게 선택하는 것도 있는데 이제 공부는 더 오래도록 꾸준히 해야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더 잘 알아서 그런 것도 있다. 놀이 하나 배우고 줄넘기 하나 더 넘는 건 몇 일 연습하면 되는데 공부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아이가 모르는게 있으면 같이 풀어보고 아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려고 노력하는 정도만 도와준다. 보통 퇴근하면 집에 와서 씻고 내 책상에 앉아서 다시 회사 업무를 본다. 뒤에 앉은 첫째는 첫째의 공부를 하며 모르는 것들을 빼고 풀고 내게 채점과 풀이를 해달라고 한다. 그럼 나도 내 업무 리듬에 맞춰 아이의 공부를 잠깐씩 봐준다. 요즘은 수학문제도 잘 설명해주고 싶어서 내가 한번씩 이런 저런 방법으로 풀어보고 설명한다. 영어도 이제 내 수준 밖이기도 하고 아이의 언어에 맞춰서 아이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 한번씩 다 풀어봐야 한다. 심지어 가끔 어떤 숙제들은 답안지도 없어서 매번 직접 풀어야 한다. 누군가 내게 그런 질문을 했다.

 

"차라리 그 돈 모아서 재산을 물려주는게 낫지 않아요?"

 

계산을 좀 해봤는데 가치 측면에서는 불확실한 미래에서 리스크가 가장 적은 것은 일단 동산이든 부동산이든 재산 보다는 교육이었고, 비용적으로도 동일 시간, 동일 노동력을 투입한다고 했을 때 교육이 더 잠재적인 기대이익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의 행복을 놓고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봤는데, 아이도 지금 노는 것보다 공부를 하면서 노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둘째야 모르겠지만 첫째는 여섯살까지 계속 노는 하루만 보내왔기 때문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도 하고 물론 아이의 판단력이 성인만큼은 아니겠지만 지금은 스티커 하나에도 행복할 나이인데 나중에는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지 알기에 미래의 행복에 조금 나누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사실 우리 아이들은 놀면서 느끼는 행복감보다 공부해서 내가 아는 걸 만났을 때, 어려운 걸 풀었을 때 더 기뻐하고 신나한다. 물론 이것도 내가 아이가 느끼고 즐기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한 몫 했을 것 같다. 어쨋든 나도 저렇게 공부가 즐거운 것이고 하나의 놀이 같이 느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의사 시키게요? 의사 연봉이 높아서 다들 의사 원한다던데요?"

 

사실 별로 생각해본 적 없다. 직업이라는게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의사라는 직업도 내 짧은 생각 안에서는 가장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필요한 전문직이고, 그런 유사한 전문직들 중에서도 가장 페이가 높아서 인기가 높지 않을까 싶다. 근데 그걸 부모가 선택하고 내가 시킨다고 시켜지는 것인가? 결국 그것도 미래에 내 아이가 자라서 선택할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결국 부모는 아이가 하고 싶은 걸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 아이가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이지 대신 선택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의사도 아이가 고민해볼 수 있을 만큼 선택의 기회를 아이가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먼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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