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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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치키즈 출신이다. 대치키즈를 대치동의 학원가 근처에서 대치동 사교육의 혜택을 받고 자란 세대라고 하니까 꼭 대치동에 사는 것을 지칭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도 대치키즈로 자라고 있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나는 '연어족'(대치동으로 다시 돌아온 대치키즈)인 셈이다. 처음 대치동을 떠나고 나서는 내가 받았던 교육 혜택을 내 자식들도 받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과 그럴 만한 능력을 갖지 못한 내가 지금의 만족스러운 삶을 포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함께 했다. 두려움을 느꼈던 것들을 나열하며 잘 살펴보면 이랬다.

 

  • 나는 대치동에 살아봤고, 와이프는 막연하게 듣기만 했다.
  • 나는 학원을 다니고 공부하며 사는 삶이 자연스럽고 익숙했지만 와이프는 그렇지 않았다.
  •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를 키우며 즐겁게 뛰어 놀고 맛있는 것 먹고 추억 만들러 놀러다니는게 행복이라고 생각했고 공감했다.
  • 그래서 대치동에 가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신경쓰고 공부를 도와주면 충분히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 당장 동네 주변에도 단대부고를 졸업하고 대전에 정착해서 사는 남편과 결혼해서 사는 와이프 친구도 있었다.
  • 나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 부부의 남편은 대치동이라면 질색한다고 했다.
  • 그런 교육은 아이를 혹사 시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전에 계속 머물 수 없었다. 커리어적으로 대전은 연구직으로는 계속 삶을 유지하기 좋았지만 IT쪽으로는 불리한 편이었다. 외주 위주로 돌아가는 기업에 소속되어 공공기관이나 연구원에 납품하는 곳에서 업무를 하거나 창업을 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나마 있는 스타트업들도 결국 서울로 가버리는 편이다. 네트워킹과 더 좋은 조직 문화를 배우고 일을 하기 위해서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사는 삶을 살았고 더 커리어 성장에 대한 욕심이 많아졌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조직은 변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걸 깨닫고 이직을 결심했다. 와이프와 논의하고 부모님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당장 서울에서 살려고 해도 대전 전세금 가지고는 턱도 없었으니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엄청 큰 복이라고 감사해하며 이직을 확정짓더라도 6개월 남은 전세 기간을 채우고 움직이기로 했다. 

 

6개월이 지나고 도착했지만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으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오히려 이런 시간이 대치동에 대해 와이프가 공부할 시간이 됐던 것일 수도 있다. 조금씩 어떤 곳에서 어떤 공부를 하는 걸 선호하는지 확인하고 알아가면서, 그리고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경험해나갔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다행히 첫째는 공부에 흥미를 느끼며 잘 적응했고 둘째는 여기서 시작했으니 원래 이 동네 아이들처럼 자라고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부분이 정말 대치동에서 자라는 것은 혹사일까 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아빠의 시선

나는 대치동에서 자라면서 혹사라고 느낀 적은 없다. 심지어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어 힘든지도 몰랐다. 대전에 살다가 대치동에 와보니 마치 혹사 당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텅텅 빈 거리와 대조되는 꽉 들어찬 학원가는 아이들, 눈 돌리기 무섭게 자리잡은 학원 간판들, 충분히 그래보였고 나도 그렇게 살았다는게 갑자기 불쌍하게 느껴졌다. 근데 살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나는 늘 살던 대로 사는 것 뿐인데 모두가 부지런하다고 하고 열심히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피어 그룹의 영향이 강한 어린 시절에 형성된 습관이 더 단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불평보다 꾸준함을 갖는.. 즉 GRIT을 갖게 될 확률이 조금 더 높은 편인 듯 하다. 물론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반발감으로 삐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공부는 놀이였고 학원에서 책을 읽으며 아이들과 떠들었다. 뛰어노는 것은 학교에서, 주말에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하루종일 공부만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 했을 때 누가 더 몰입할 수 있을까?

 

학습은 말 그대로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다. 배울 수 있는 기회와 채널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이다. 다만 배우는 것에 투자를 한 만큼 익히는 데에 시간을 못 쓰는 아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학원만 뺑뺑이 치고 정작 자기 공부는 못한다고도 한다. 근데 그것도 일부의 이야기이다. 조금만 미비해도 더 낮은 반으로 편성되기 일쑤고, 숙제만 몇 번 빼먹어도 숙제 챙겨달라는 학원의 전화를 받게 된다. 오히려 혼자 공부하고 익힐 시간을 학원이나 과외로 메꾸는 부모들은 있어도 아예 내려놓는 것은 대치키즈들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그래서 학(學)을 위해서라도 습(習)을 해야 한다. 그게 대치동 학원가이다. 

 

물론 혹사 당하는 사람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부모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주말이면 나들이라도 다녔던 이전의 삶과 비교하면 지금은 각 잡고 쉬고 싶어서 빡세게 아이와 공부를 한다. 내 수익으로는 많은 학원을 보내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다. 조부모의 도움으로 어떻게 첫째는 영유 2년차로 졸업하고 둘째는 영유에 올해 입학했지만 둘째가 졸업하고 나면 지금 수준을 넘는 교육비는 버겁다. 지금도 생활비를 모은 돈에서 까먹으며 쓸 정도이니 말 다했다. 지금 사는 집이 대치동이 아니기도 하고, 둘 모두 아직 어리고 딸이라 라이딩은 어쩔 수 없이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와이프는 둘의 스케줄을 맞추며 때로는 운전기사, 때로는 비서가 되어 대치동을 넘나든다. 나는 회사에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들을 모두 마치면 집으로 헐레벌떡 와서 집에서 업무하며 첫째의 공부를 도와준다. 아이들 모두의 일정이 마무리 되고 우리 부부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잠들기 바쁘다.

 

쓰다보니 문득 생각났는데, 이 동네 오면 부모들이 화려하고 부자들만 있을까봐 겁내는 분들도 있던데 사실 대치동 학원가가 부촌이라고 할 곳인가 싶다. 집값 비싸다고 전세, 월세 사는 사람들도 부자 취급하는 것은 좀 편협한 사고라고 생각한다. 진짜 부자는 그 세를 받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동네가 동네다 보니 아이들 공부에 시간과 돈을 모두 몰빵하듯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의사, 판사, 세무사 등 사자돌림들도 많다. 그렇다고 모두 그렇지 않다. 아이 학교의 절반정도는 영유를 다니지 않았던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글도 제대로 못 떼고 학교 들어온 아이들도 많다. 엄마들도 에르메스를 휘감고 롤렉스 시계차고 벤츠 끌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보세 옷 입고 슬리퍼 끌고 버스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근데 그런 외모로 누군가를 쉽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게 내 자식 교육을 위해서든 뭐든...

 

아이의 시선

첫째는 6살 때 처음 영어 유치원을 다녔다. 4살 때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있으니 6살은 이 동네에서는 많이 늦은 편이었다. 12월 생인데 말도 잘 못 뗀 것 같은데 영어 유치원이라니 걱정이 많았다. 나름 잘 적응하고 영어도 곧 잘 해내준 것에 감사할 뿐이다. 둘째는 다섯 살에 영어 유치원에 들어갔다. 첫째가 부럽다고 했다. 난 왜 다섯살 때 안갔냐고 대뜸 물어보는데 당황스러웠다. 이제 첫째의 기준은 많이 알고 영어든 수학이든 잘 하는 친구들이고, 잘하고 싶어한다.

 

아이는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공부를 잘하면 선택할 수 있는 게 많고 공부를 잘하는 것은 정말 오랜 시간에 걸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서 공부를 더 잘하고 싶다고 말한다. 6살 초반에는 공룡 박사님이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고, 후반에는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지금은 아이브 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 장원영이 영어 발음 좋은게 한 몫 해주고 있다. 과목별로 이걸 알면 어떤 점이 좋고 공부를 많이 하면 어떤 걸 이룰 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시간을 나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동기부여도 해주고 칭찬도 많이 해준다. 그리고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강박관념을 없애기 위해 틀려도 된다는 설명도 자주 해준다. 

 

다 맞아서 100점 맞는 것보다 틀리는 게 나은 이유는 내가 모르는게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더 배울 수 있다는 소리니까 기쁜 것이다. 이건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칭찬만 해주고 마는 피드백 없는 곳에서 도태되어 썪다보면 차라리 지독한 솔직함을 원하는 것처럼 아이에게 세이프존을 벗어나는 트리거는 테스트이고, 테스트는 나를 더 성장시켜주는 요소라는 점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대충해서 아는 지도 모르는 지도 모르고 틀리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해도 열심히 했는데 틀리는 건 최대한 함께 풀어보며 알아가려고 노력한다. 언제까지 함께 풀며 아이가 지금처럼 협조적일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렇다.

 

아이는 혹사당한다고 생각할까? 내친 김에 물어보니 잘 안풀리는 문제를 만나면 괴롭고 힘들기도 한데 알고 나면 신나서 괜찮다고 한다. 이미 아이들이 나보다 한수 위다. 아이마다 부모마다 체감하는 고통의 정도는 분명 다를 것이다. 어제 밤 오랜만에 와이프와 긴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건 아무리 누가 뭐래도 자기 인생을 없애고 자신을 혹사시키며 아이를 서포트 해주는 엄마는 혹사 당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그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래서 결국 대치동은 엄마의 정신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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