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팬게시판은 서울 서포터즈에게는 성지라 불리운다. 실명과 닉네임이 함께뜨면서, 무지한 글을 남기기에는 부담감이 크다는 문제때문인지 조회수가 1000이 넘는 공간에 쉽게 글을 남기지 못한다. 하지만 김진규 선수를 '망한 선수'에 비유하며, 연봉 삭감을 요청했던 한 서울 팬 네티즌의 글이 화두에 올랐고 서울 팬들은 화가난 채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실패한 선수를 받아주는 곳이라며 괘씸하다고 표현한 '히히히'는 김진규 선수가 사실 중국으로 진출하게 된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 FC서울과 김진규 선수와의 관계는 매우 좋은데, 흔히 몇몇 사람들은 김진규 선수의 이적이 순전히 돈 때문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다. 필자는 중국 이적 후 잠시 돌아왔던 김진규 선수와의 인터뷰 전문을 다시 한번 읽어봤지만, 그가 굳이 실패해서 친정팀 복귀하려고 애쓰는데 돈 많이 주고 쓰는 그런 관계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 체중이 빠져서 그런지 제일 좋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한국에 왔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반쪽이 됐다고 걱정한다.(웃음) 중간에 발목과 다리 근육을 다쳐서 재활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운동한 지는 며칠 되지 않았지만 훈련량이 많아 그런 것 같다.
작년에 서울의 주축이었고, 팀이 2관왕을 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갑작스레 떠난 것에 의아해 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작년보다 재작년 경기력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서울 코칭스태프나 주변에서는 작년이 정말 좋았다고 칭찬해주셨다. 옆에서 받쳐주는 선수들이 워낙 좋으니까 나는 그 사이에 묻어갔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지금도 후배들이 전화를 주며 1년만 하고 오라고 한다. 빈 말이라도 정말 고맙다. 사실 서울의 선후배들에게 미안하다. 올 시즌이 서울에게 중요한 시즌이고, 내가 그 안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나도 정말 무언가 탈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중국으로 계약하러 올 때 아무에게도 얘기 안하고 혼자 왔다. 나중에 계약을 마치고 기사가 나왔을 때 (박)용호 형과 (현)영민이 형이 깜짝 놀라 전화를 주며 섭섭하다고 했다. 내가 팀의 부주장이다 보니 형들하고도 관계가 좋았는데 그때 정말 미안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중국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건가? 아니면 자의로 떠난 건가?
서울이라는 구단은 축구를 하기에 정말 좋은 구단이다. 그런데 내가 축구를 하면서 그 팀 안에서 나태해진 부분이 많았다. 2007년 서울에 가자마자 대표팀에 탈락했는데 그때 마음고생이 굉장히 심했다. 팀의 면면이 워낙 좋으니까 경기에서 계속 이기며 그 아픔을 잊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문득 돌아보니 그 흐름 안에 갇혀있단 생각이 들었다. 더 높은 것에 대한 목표의식을 잊고 K리그 경기만 뛰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변화를 주고 싶어 해외 진출을 생각했고 중국행을 결정했다.
돈 문제나 구단과의 갈등이 있어서 떠난 건 아니라는 얘긴가?
중국으로 가기 전 구단 측과 내 거취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때 “갈 곳이 있다면 말리지 않겠다. 열심히 하고 나중에 돌아와라. 만일 이적이 성사 안되면 팀에 남아도 된다”는 얘기해주셨다. 마지막까지 좋게 봐주셨다. 한웅수 단장님을 비롯한 FC서울의 모든 분께 고맙게 생각한다.
대표팀에 대한 목표 때문에 중국으로 떠났다는 얘긴데, 쉽게 이해되거나 큰 설득력을 주는 얘긴 아니다.
축구 선수는 대표팀에 대한 야망이 있어야 하는데 20대 중반에 벌써 그게 사라지고 있었다. 대표팀과의 연이 끊어진 지 2년이 넘었다. 처음엔 내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이의 문제라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에 서울에서 우승을 경험하고 정상에 서서 돌아보니 나를 바꿔야만 대표팀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자, 내 스스로를 탈피해보자고 다짐했다. 중국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 게 쉽진 않지만 나를 새롭게 만들려고 한다.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떠난다면 K리그의 다른 팀도 가능하지 않았나?
K리그 내에선 이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K리그에서 내 팀은 오직 서울뿐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의 다른 팀을 알아보던 중 박성화 감독님이 다롄으로 올 생각 없느냐는 제의를 주셨다. 박감독님과는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좋은 기억이 많았다.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배웠었다. 감독님께 내 운명을 맡기면 다시 좋은 걸 주시리라 생각해 중국 무대에 도전하기로 한 거다.
중국 축구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오프시즌만 해도 한국보다 길다는 차이가 있는데.
한국이었으면 지금쯤 시즌 개막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4월에 리그가 개막한다. 원래는 3월에 컵대회를 한다고 해서 거기에 맞추고 있었는데 그 일정이 갑자기 취소됐다. 나뿐만 아니라 중국 선수들조차 새 시즌을 준비하는 걸 너무 지루해한다. 다롄은 중국 북부라 너무 추워서 겨울 동안 훈련을 못한다. 지금 다롄을 떠나서 훈련한 지 2개월 째다. 중국 쿤밍에서 1달, 일본에서 2주, 한국에서 3주를 했다. 한 곳에 정착도 못하고 돌아다니니까 이젠 선수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쳤다. 감독님께서도 힘들어하신다. 한달은 체력 훈련, 나머지 한달은 전술과 실전 게임 위주로 하다가 바로 시즌이 시작하는 한국과 비교하면 시즌 전부터 너무 루즈하게 돌아가 진이 빠진다.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해봤지만 중국 생활은 또 다를 것 같다. 박성화 감독 외에도 안정환, 전광진 같은 한국 선수가 있다는 게 다행일까?
만일 일본에 갔으면 분명 이곳보단 더 편하게 지냈을 것이다. 일본말도 좀 할 줄 알고 이미 어떤 부분에 적응해야 할 지를 아니까. 반면 중국은 말도 안 통하고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다행이라면 팀에 대화 상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광진이 형과는 한국에선 전혀 교류가 없었는데 이곳에서 룸메이트로 지내며 친해졌다. 무엇보다 정환이 형이 정말 많이 도와준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환이 형 도움이 없는 게 없다. 밖에서 보면 정환이 형이 딱딱할 것 같아 보이는데 엄청 부드러운 남자다. 만일 우리가 피곤하다고 하면 회복하는 영양제 같을 걸 직접 물에 타서 준다. 한국적 분위기에선 열살 차이 나는 후배한테 그렇게 신경쓰기 쉽지 않은데, 정말 많이 신경 써 준다.
2010년은 김진규에게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경기력의 기복도 줄었고 경기 매너에서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2009년엔 많이 힘들었다. 월드컵 준비 기간인데 대표팀에선 불러주지 않으니까 초조해졌다. 서울에서 경기는 뛰는데 생각이 다른 데 가 있었다. 나는 경기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보는 입장에선 김진규가 완전히 맛이 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010년엔 연초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굉장히 힘들었다. 28년 간 내 인생을 이끌어주던 사람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으니 충격이 컸다. 처음에 부고 소식을 듣고는 장난인 줄 알았다. 당시 내가 바로 전화를 못 받고 (김)치우 형을 통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는 정말 축구가 문제가 아니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와 운동을 시작했고 동료들을 의식해 밝게 생활하려고 했다. 동료들은 내가 의외로 잘 이겨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운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고 아무 것도 못한 채 방 안에 혼자 있었다. 그 때 안익수 코치님(현 부산 감독)과 최용수 코치님께서 내가 다른 길로 새지 않게 잘 통제해주셨다. 특히 안익수 코치님은 내가 잘못하면 앞에서는 정말 눈물 쏙 빠지는 쓴 소리를 해주시고, 뒤에서는 몰래 불러 좋은 얘기로 달래주셨다. 그 과정에서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형이 있지만 실제로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건 내 몫이다.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다른 친구들은 결혼을 하면서 책임감을 생각하는 데 나는 조금 다른 계기로 정신적 성장을 하게 됐다.
2010년의 김진규는 자신을 다스리는 모습이었다. 사실 작년에도 퇴장은 있었지만 심판에게 격하게 항의하거나, 상대 선수와 크게 충돌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작년 첫 퇴장이 경남전이었다. 경고 2장을 받고 나갔다. 당시 최광보 심판이 주심을 봤는데 그때 내가 먼저 전화를 해 죄송하다고 얘기했다. 후반기 대구전에도 퇴장이 있었다. 사실 그건 납득이 안 갔지만 항의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 나도 내가 그 부분에서 잘못한 걸 알고 있다. 한웅수 단장님부터 시작해서 구단 내 많은 분들이 항의하는 습관을 고치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작년에야 나를 통제하게 된 것 같았다.
김진규는 극성 팬과 안티 팬이 확실히 갈리는 선수다.
안티가 많은 건 확실하다.(웃음) 내가 잘 될 땐 그런 팬들을 신경 안 썼다. 오히려 나를 놀리는 글을 찾으러 다니고 그걸 보며 ‘왜 저러고 사나’하며 즐겼던 적도 있다. 그런데 내가 한창 못할 때 그런 조롱을 들으니까 화나고 주눅이 들었다. 서울이란 팀을 좋아했던 건 그런 나를 늘 옹호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경기장에 서포터가 수적으로 거의 상대팀을 압도했다. 그들을 보면서 세상에 날 싫어하는 이만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힘을 얻었다.
20살에 대표팀 주전이 됐고, 21살에 월드컵을 경험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엔 대표팀에 가지도 못했다. 대표팀 경력이 너무 일찍 꽃폈고, 너무 일찍 졌다.
대표팀과 관련해서 이런 저런 얘기나 소문이 많다. 2006년 월드컵 때만 해도 다음 월드컵에 나가지 못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남아공 월드컵 기간 동안 속상해서 대표팀 경기를 피하려고 했다. 그래서 제주도에 갔는데 거기서도 사람들이 대표팀 경기만 보고 있었다. 나 혼자 피하고 무시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내가 괴롭지 않으려면 다시 대표팀에 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게 맞다. 대표팀을 하면서 가장 많은 걸 배웠던 것 같다. 우리나이로 27살인데, 벌써 대표팀 경력을 마치기엔 이르다.
3년 째 가지 못하고 있는 대표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는 건가?
너무 큰 미련이 있으니까 도전의식을 만들기 위해 이 곳에 왔고 박성화감독님께 나를 다시 맡겼다. 한번만 더 기회만 오면 그땐 꼭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요즘 홍정호, 김영권 같은 어린 친구들도 수비를 잘한다. 하지만 나도 경기 리딩이나 경험에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드보카트 감독과 베어벡 감독 시절 총애를 받은 선수 중 한 명이다. 당시 세대교체를 이끌었던 김진규를 포함한 상당 수의 젊은 선수들은 지난 2년 간 대표팀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들에게 투자된 기회나 시간을 본다면 아까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대표팀에 한국인 감독님들께서 오시고 그 선수들이 사라진 건 분명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논외로 쳐도 (조)재진이 형이나 (이)호 같은 경우는 기회를 주면 분명 잘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럴 걸 보면 외국인 지도자와 한국인 지도자 간에 선호하는 스타일의 차이가 있는 거 같다. 내 경우는 외국인 감독님들과 잘 맞는 것 경우인 거 같다.
정조국, 백지훈, 이호, 오범석, 김동현 등과 절친한 사이다. 한때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들이 이젠 다 20대 후반이다. 요즘 만나면 대화의 화제가 예전과는 완전히 다를 것 같다.
이제 어른이 됐고 조국이, 호, 범석이는 결혼을 했으니까 아기 용품이나 와이프 관련된 얘기들 얘기만 한다. 미혼인 나랑 지훈이는 그 사이에 끼지를 못하니까 둘이서만 대화를 하고 있다. 그럴 때는 장가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Q.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인가?) 빠른 시일 내에 하려고 한다.
중국에서 오래 머물게 될 것 같나? 계약이 끝나면 K리그로 돌아올 것인가?
다롄과는 1년 계약에 옵션으로 1년을 더 뛸 수 있는 계약을 했다. 중국 무대에서의 경험을 통해 어떤 환경, 어떤 지도자에게도 인정받는 선수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쉽진 않을 테고, 그만큼 각오와 노력은 하고 있다. 그 뒤에 다시 서울로 돌아가 K리그 팬들을 만나고 싶다.
하지만 이러한 글과 팬들의 뜨거운(?) 반응에도 불구 김진규 선수가 직접 나서 댓글을 달았다. FC서울 공식홈페이지에서는 "배추장사" 라는 아이디를 쓰는데 필자가 찾아본 결과 어릴적 꿈이 배추장사였다한다. 그리고 이 댓글을 단 사람이 실제 김진규가 맞느냐를 놓고 진위여부도 많다. 김진규라는 팬이 우연치않게 보고 쓴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도 있지만 대부분의 FC서울 팬들은 김진규 선수가 맞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 필자가 축구선수들의 예능출연을 반기는 포스팅을 하며 한가지 강조했던 부분이 있다. 바로 선수들이 전과 같지 않은 다양한 선수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키며 자연스레 팬들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팬들은 정상급 경기도 원하지만 그들과 친해진다는 느낌 그리고 거기서 다가오는 '친근감'에 매료될 수 있다. 분명 김진규 선수가 '공인'임에도 저런 글에 일일히 반응해 前부주장으로서의 위엄이 없어보인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한국인의 잘못된 정서가 아닐런지 필자는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옛 양반들이 체통을 지키려고 했던 무게감이 현재 축구선수들한테 강요할 필요가 있는건가. 친구처럼 친근하게 팬들과 소통하는 문화가 부러웠었고, 지금은 그렇게 되고 있다는 점에서 김치우 선수가 남겼던 글이나, 지금의 김진규 선수의 댓글이나 결국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계약이지만 팀 훈련에 함께하며 구단과의 친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김진규 선수, 그는 분명 K리그와 서울을 빛냈던 선수이고, 국가대표에서 맹활약했던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도전을 마치고 돌아온 김진규 선수에게 박수쳐주며 다시금 정상급 활약으로 K리그 부흥에 땀으로 보태는 선수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