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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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전을 앞두고 최강희 감독은 엔트리의 대부분을 K리그 선수들로 구성하며 K리그 선수들의 힘을 보여주려하였다. 우즈벡과의 친선경기에서 보여준 이 선수들의 파괴력은 K리그의 힘을 알리기에 충분하였다. 해외축구 팬들에게 괄시를 받던 국내축구를 사랑하던 팬들은 최강희 호의 이 날 경기에서 큰 힘을 얻었다. 하지만 쿠웨이트 전에서는 이들뿐만 아니라 해외파 선수들과의 조합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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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K리그에는 흥행력이 부족하다는 평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흥행에 과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안정환과 고종수의 은퇴에 흔들림 없이 건재함을 알리며 골을 넣은 '라이언 킹' 이동국은 제 2의 부흥기를 안겨줄 가장 유력한 선수로 주목되고 있다. 물론 박주영 신드롬으로 제 2의 부흥기를 맞은 K리그는 이후 관중 동원 기록을 계속해서 갱신해나가며 최고의 리그로 우뚝 서려했다. 그리고 우즈벡 전에서 골을 넣은 두 선수 역시 2010시즌 FC서울의 우승을 이끌었던 김치우와 전북의 올 시즌 우승을 이끈 이동국이라는 점 역시 주목할만 하다.

두말 할 것 없이 현재 K리그 최고의 희생양은 FC서울이다. 어느 국가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FC서울과 같은 기분 나쁜 별명을 가진 구단은 존재한다. 상대를 희롱하고 약 올리는 행위는 어느 리그에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패륜 구단으로 불리던 FC서울은 예전 1983년 12월 22일 창단했다.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으로 수퍼리그 (K리그 전신)에 출범한 서울은 데뷔 경기 때부터 강한 인상을 남기며 이슈를 만들어 냈다. 당시 럭키금성그룹은 프로축구단을 창단하기 위해 기획조정실이 주축이 되어 1982년부터 면밀한 준비 작업을 했으며 서울특별시를 창단 연고지로 하여 출범할 계획이었지만 당시 대한축구협회 수퍼리그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충청도를 연고지로 배정하였다.

이후 1990년 도시 연고제 시행과 함께 충청도에서 서울로 연고 이전을 하며 동대문 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해 한국 프로축구선수권에서 우승을 하였다. 특히 1990년 우승은 한국 프로축구사에서 최초 서울 연고지 프로축구단의 우승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1992년 구단 출범 10주년을 기념하고 팬들에게 더욱 친숙한 구단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1992년 치타스 가족이라는 구단소식지를 발행하였으며 서울에서의 지역 연고 정착을 위해 경인지역 조기축구회팀들과의 자매결연 사업을 추진하고 LG치타스배 축구대회를 개최하였다.

2002 월드컵 유치활동과 맞물려 서울 축구전용구장 건설과 지방 축구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청와대의 지침을 받은 프로축구연맹에 의해 강행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인하여 서울 연고 고수를 강력히 희망하였지만 1996년 연고지를 서울에서 안양으로 강압적인 연고 이전을 당하면서 구단 공식 명칭을 안양 LG 치타스로 변경했다. 그리고 5월 14일부터 11월 15일까지 진행된 2000시즌에서 현 FC서울 감독 최용수의 대활약에 힘입어 우승을 차지한다. 물론 이에 대해 많은 전현 안양 팬들의 반발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팬들의 마음과는 다르게 구단의 역사는 역사이므로 기술하고자 한다.

그리고 여기서 2004년 LG그룹과 GS그룹의 분리와 함께, 안양에서 다시 서울로 연고 이전을 추진하였다. 당시 부산 아이콘스와 함께 프로축구 연맹에 서울 연고 이전을 신청하였으며 중도에 부산이 포기함으로써 이사회의 만장 일치로 연고 이전이 승인되었다. 2004년 3월 22일 구단 공식 명칭을 공모를 통해 선정된 FC 서울로 변경하였으며 2004년 4월 3일 47,928명의 대관중 속에 서월 월드컵 경기장에서 출범 경기를 가졌다. 2006년 FC 서울은 서울에서의 지역 연고 정착과 구단 자생력을 키우기 약 1억원을 들여 일본 J리그 컨설팅 회사 하쿠호도사에 의뢰해 장기 프로젝트‘2035 비전을 세웠다. 즉 2035년까지 ‘진정한 NO 1’구단을 지향한다는 프로젝트의 기본 이념에 따라 지역 밀착을 통해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미래의 잠재 팬 확보를 위한 다양한 마케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리고 패륜이라는 별명이 생겨나게 된 것은 안양 팬들과 함께 하겠다는 구단의 약속은 서울 연고 이전 확정과 동시에 팬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도망갔다고 하여 생겨났다. 그리고 이를 두고 안양 팬들을 포함 라이벌 구단들은 서울을 두고 '패륜'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이후 이를 시발점으로 부천이 제주로 연고이전을 강행하며 서울이 앞선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파장은 커졌고, 이는 K리그 팬들에게 번져나갔다. 그리고 제주를 남쪽의 패륜, 서울을 북쪽의 패륜으로 칭하며 '북패'와 '남패'로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이 두 구단을 제외하면 마땅히 팬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그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경남FC가 최근 윤빛가람과 김주영 사건으로 잠시 새로운 적으로 부상하기도 했지만 곧 이 역시 수그러들고 있다. 모든 구단이 각각 공공의 적이 되는 순간 K리그의 라이벌 의식은 더욱 강해지고 이를 통한 흥행을 노려볼 수도 있다. 골수 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구단 팬들의 자기 구단 사랑이 한 구단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단점 역시 돌파해볼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일 수도 있다. 기회가 가득했지만 K리그의 흥행을 팬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짓밟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노이즈 마케팅' 역시 마케팅의 큰 효력이 있는 전략이다. 새로운 제도 도입과 국가대표팀의 대부분을 K리그 선수들로 메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가장 가까이서 가장 큰 응원을 보낼 수 있는 팬들의 성원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해외축구 팬들에게 무시당하는 국내축구와 국내축구 팬들 사이에서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는 FC서울이 새로운 기점을 맞아 반전의 기회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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