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SinSa)

우한 코로나가 유행하자 여러 기업들이 재택 근무를 도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디지털 노마드를 경험하고 있는 상태인데 집에만 있으니 상상했던 디지털 노마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아무래도 프로덕트 오너가 완전한 리모트 근무가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불편함은 적었다. 이제와서 돌아보면 회의를 진행함에 있어 어떻게든 질문을 해서 추후에 생길만한 리스크를 스캔하기 위한 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컨퍼런스콜에서의 침묵의 불편함 때문에 기다림 없이 회의를 종료하고 빠르게 실행할 수 있다. 아무래도 이렇게 정리되는 시간들이 많아지니 프로덕트 오너가 온전히 집중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생겼고 문제와 가설 검증에 집중하다보니 더욱 효율적인 이터레이션을 가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또 단점이랄 수도 있지만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육아를 잠시 돕는다거나 편하게 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짧고 굵은 리플레시가 가능하고 하루의 업무 마무리를 위해 급하다면 출퇴근 시간이 절약된 만큼 더 내 노력을 투입시킬 수 있으니 전반적인 워라밸 상승 효과가 보였다. 

 

물론 단점도 있다. 모두가 집중하는 시간이 더 광범위하게 달라지고 각자 상황에 따라 가족들이 얼마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느냐에 대한 차이도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5살, 2살의 우리 아이들은 크게 방해하지 않고 엄마와 잘 놀아주어 집중에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컨퍼런스콜 와중에 가족들이 말을 거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개가 짖는다거나 하는 노이즈들은 우려했던 대로 해당 회의에서 빈틈이 발견되곤 했다. 더 디테일한 예를 들면 스프린트 계획을 진행하며 정해졌던 일들이 평소 같으면 다시 묻지 않을 것도 시간이 흘러 다시 묻는다거나 하는 등의 단점이다. 그리고 돌아보니 기존에는 화이트 보드에 무언가를 쓰고 각자 사진을 찍어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스프린트를 진행했던 과거와 달라 PO가 이런 상황에서 스프린트를 주관할 때에는 명확화(Clarification)에 더 신경을 써서 우선순위화(prioritization)한 우리의 일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자는 그래서 결국 화이트보드에 간단하게 작성해가며 전달했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페이퍼웍이 증가했으니 효율적인 만큼 일을 했으니 결국 제로섬 게임이지 않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화이트보드에 작성한 것을 보는 것보다 잘 정리된 페이퍼를 보며 모두가 함께 일을 하는 것이 PO 개인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며 함께 생산성 문서를 공유하고 함께 보충하고 채워나가는 습관은 스쿼드 안에서의 협업 능력이 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히려 개인과 조직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소요되는 시간 대비 더 가파른 성장을 제공하는 일이니 훨씬 효율적이다.

 

하지만 최근 몇 통의 전화로 이런 장점들로 가득했던 리모트에 한 가지 단점이 발견 되었다.

 

"언제까지 재택 할 거야?"

"언제 복귀해?"

"그렇게 일이 돼?"

"회의는 어떻게 해?"

"고객 미팅은 어떻게 해?"

 

유연하게 변화에 신속한 대응이 가능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던 내가 속한 조직과 위계적으로 일을 해오던 다른 조직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공유 차원에서 답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후속으로 따라오는 몇가지 질문을 접하며 생각보다 이 조직이 굉장히 위계적이며 수동적인 조직이라는 것을 느꼈고 생각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육아도 좀 돕지 그래?"

"주변 사람, 윗 사람 눈치 안보이냐?"

 

산업과 하는 업무에 따라 지금 내가 하는 재택 근무가 불가능한 곳도 있고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저 말을 하는 사람들이 평소의 업무를 바라보면 위계적인 조직에서 대면으로 업무 보고를 받고 가결하고 승인하는 의사결정 과정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일을 지시하고 시키는 것이 모든 업무의 전부였던 사람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프로세스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이다 보니 재택근무가 도입되는 것에 일이 되지 않을거라며 반대했고 점점 위기 상황으로 치닫자 아래와 같은 생각의 패턴을 보였다.

1. 걱정은 되는데 내가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2. 그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아 이것 저것 건들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3.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의 일을 쳐다본다.

4. 보다 보니 다른 동료가 일을 잘 하는지 의심된다.

5. 의심을 말하자니 오해가 생길까 두렵다.

 

이 패턴 어딘가 익숙하다 싶어 다시 돌아보니 자기 확증편향으로 가는 루틴과 굉장히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남에게 의지하고 시키는 것 외에는 상당히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을 애써 부정하며 가뭄에 비 내려달라며 기우제를 지내는 것과 다름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일 하는 스타일의 차이'라는 엄청난 자기 합리화 하나로 여태까지 조직에서 버텨왔었고 자신의 능력을 하나씩 버려왔던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사냥개가 애완견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표현이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근데 사실 그들은 능력있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는 구실로 능력의 하향 평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함께 추락하며 동반하는 사람이 있으니 안전할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뿐이다. 시장은 우리에게 그렇게 관대하지 않고 냉정하다.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고 위계적인 절차와 일들은 울타리 안에서 애교나 떨며 간식이나 받아먹는 애완견들의 집단으로 만들 뿐이다. 냉정한 시장에서 살아남아 더 의미있는 영향을 발휘하려면 함께 협력하여 사냥을 하고 나눠 먹을 수 있는 늑대 무리가 되어야지 스스로 애완견이 되어 편안함에 도취되거나 입 벌리고 받아먹는 간식에 즐거움을 느껴선 안된다. 괜찮아 보이고 말 잘 듣는 사람이 되어라! 내가 시키는 것이나 해! 라며 자신들의 수준에 맞추고 적당한 수준을 유지시키며 존속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비겁하고 저열한 방식일 뿐이다. 우리는 성장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그 성취감을 위해 매일 노력해야 한다. 어렵고 힘든 일 모두 스스로 즐기는 그 순간 조직이 성장하는 것이지 어렵고 힘든 일을 더 어렵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닌 문제의 해결을 위한 또 다른 문제의 제기인 것이다. 모두가 이 일을 즐기게 해주는 조직에서 성장을 경험하면 불편하고 재미없는 일들로 사람을 적응 시키려는 조직이 얼마나 불편하고 짜증나는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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