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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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세계 무대로 첫 도전한 대한민국 축구는 그 후 꾸준한 발전을 해왔다. 물론 그 이전의 한국 축구 역사를 따지자면 삼국시대까지 거론된다. '축국(蹴鞠)'이라고 불리던 놀이가 현대의 축구와 상당히 유사한 놀이였다한다. 축구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 한국에 상륙한 영국군함 승무원들을 통해서 인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으로 체계가 잡히고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첫 월드컵이 개최된 190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축구의 시작은 월드컵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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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코스팬 공식홈페이지)

 그 후 계속된 발전으로 2002년 4강 신화, 2010년 첫 원정 16강 진출 등 세계 무대에서도 주목받고 있지만 실상 해외에서는 보지 못하는 우리나라 축구의 문제점이 있다. 이는 박주영 선수가 아스날에서 지적받기도 했던 '창의력' 결여와도 그 연관성이 있다. 흔히 국내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큰 틀에서 둘로 나누는데 바로 통칭 '클럽축구'와 '학원축구'이다. 이 둘은 서로 장단점이 있는데 외국에서는 더 자유로운 방식의 '클럽축구'를 선호한다.

흔히 클럽축구라 함은 자유분방함 속에서 유소년 선수들의 개인 기량 향상에 집중하는 반면 학원 축구는 실리적으로 움직이길 교육하며 선수의 개인 기량보다는 팀 성적에 우선 순위를 둔다. 해외 스카우터나 유소년 코치들은 흔히 20세 이전에 선수의 개인 기술 습득 능력이 끝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후의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그 때부터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어린 나이임에도 탁월한 개인 기량도 출중한데 체력과 근성까지 겸비한 선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선수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한다고 한다. 

모든 운동은 어릴 때 배워본 사람과 다 커서 배운 사람 간의 차이가 있다. 프로들은 이런 사람의 폼만 보더라도 대충 감이 잡힌다고 한다. 이는 골프를 비롯해 축구나 달리기까지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에 포함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축구는 대부분 학원축구를 추구한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클럽보다는 대학을 가길 원했던 부모가 대다수였던 5~10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선수가 우선 대학을 가는 상황이였고, 클럽에는 뒤늦게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대학보다는 프로리그를 선택하는 선수의 증가와 학교 축구를 후원해주는 클럽들이 늘어나면서 한동안 축구팬들은 학원 축구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문제는 클럽의 지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 성적 위주의 판단이 앞서는 것이 유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이고, 그것이 학교측에도 좋다. 좋은 선수보다는 좋은 팀을 꾸리는 것에 어릴 때부터 적응시켜야하다보니 개인 기술 향상보다는 팀 전술 훈련에 축을 두게 된다. 감독은 어린 선수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포지션에서 자신이 원하는 움직임을 강요한다. 그리고 좋은 성적이 나와야 선수에게도 좋으므로 선수들도 그 말을 따른다. 트래핑이 부족한 선수에게 그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시간적 투자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간다는 소리다. 앞서 언급한대로 어린 선수들이 기술 향상이 가능한 시점을 놓치면 때는 이미 늦는다.

얼마전 아스날 닐 밴필드 리저브팀 감독에게 혹평을 들은 박주영 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어려서부터 브라질 유학파라곤 하지만 브라질 유학을 다녀온 전후 그의 플레이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브라질 유학 후 오랜기간 다시 한국에 머물며 조금씩 뒤쳐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클래스는 달랐지만 세계적이지 못하는 데에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학원축구의 뿌리를 뽑으려고 한다. 클럽에서 직접 키우는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했던 움직임 역시 거기서 나온 것이다.

학원 축구 코치나 감독들은 자기 자식을 해외로 유학보내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기성용 선수가 그러했다. 기성용 선수의부친인 기영옥(前광양제철고 감독/現대한축구협회 이사)씨의 권유로 5년간 호주에서 머물렀던 기성용은 확실히 순수 국내파들 사이에서 돋보였는데 이 역시 학원 축구와는 차이가 났던 교육 방침 때문이며, 당시 부친 역시 한국의 유소년 시스템에 분명 의구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주영 선수도 포항의 지원으로 고교 시절 브라질 유학을 다녀왔고, FC서울로 이적하며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한국 축구에서는 보기 힘든 기술력으로 세계 무대에 어필했다.

물론 이러한 학원축구가 단점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키는 것은 잘한다', '전술 이해도가 높다' 라는 평가는 단연 으뜸에 속하지만 축구 팬으로서는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칭찬일 수 밖에 없다. 천재들은 혹사 당해 세계 무대에 제대로 도전도 못하고 지게 만들고 이젠 아예 천재들은 해외로 보내거나 애초에 그 재능을 숨겨야만 하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축구를 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도 어려서 해외로 보내려고 한다. 당연히 한국 스포츠의 단점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3경기 연속 선발하여 3승을 챙겼지만 선수 어깨는 아작이 나게 만든 고교야구, 국가대표부터 모든 경기를 소화하게 만들었던 고교축구까지 한국 스포츠의 그 뿌리는 우리 눈에만 보이는 어쩌면 썩은 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전술적인 움직임들을 보며 혀를 내두른다. 물론 세뇰 귀네슈 감독이 FC서울 감독을 맡아 단 한차례도 우승하지 못했지만 창의적인 플레이를 강조하며 세밀한 움직임과 패스를 요구했던 귀네슈의 전술과 훈련 방침은 기성용, 이청용을 탄생시켰고, 지금 서울을 이끄는 고명진, 고요한 등을 배출했다. 외국인 감독을 선호하는 이유는 분명 어려서부터 학원축구에 적응해버린 선수들에게 창의적인 부분을 프로 진출 후에 배우라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일 수 밖에 없다. 20세 이전에 90% 완성된다는 개인 기량을 20세가 넘은 나이에 익히길 강요하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될 턱이 없다. 해외무대와의 수준차이는 이미 아이들이 태어나 축구공을 처음 받는 시기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청용 선수가 처음 축구를 시작한 11살이 사람들은 늦게 시작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청용의 플레이가 달랐던 점이라면 FC서울 유스 출신으로 중학 중퇴 후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키워진 선수라는 것이다. 이는 기성용, 박주영과 같은 해외 유학파 선수들과의 격차를 좁혔고, 데얀을 비롯한 외국인 선수들까지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눈물을 삼키고 해외 유스 클럽으로 아이들을 보내고 있다.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며 김치 맛을 잊어가며 축구를 한다. 물론 부모와 함께 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한국에서의 생활을 포기해야하는 그 과정을 아는 이가 있다면 해외 축구 유학의 선택이 어째서인지, 그리고 우리나라 축구의 문제가 과연 단 한가지의 문제만 있는 것인지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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