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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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 감독 교체 이후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의 전술과 선수 기용에 대한 추측과 관련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기자회견에서 그가 밝힌 내용은 '국내파'를 선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벤치를 달구며 경기 감각이 떨어진 해외파 선수보다는 경기 감각이 좋은 K리거를 중용하겠다는 그의 말은 인터넷을 통해 찬반론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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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영광은 '조화'에서 시작했다.
한국 축구가 세계무대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때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당시 23인의 선수들을 살펴보면 J리거 포함 해외파 선수는 7명의 선수 뿐이다. 중복되는 포지션을 감안하고 실제 선발 라인업을 따져보면 3~4명의 선수만이 출전했던 것이 대부분이다.

1.이운재 (GK) 수원

2.현영민 (DF) 울산

3.최성용 (MF) 수원

4.최진철 (DF) 전북

5.김남일 (MF) 전남

6.유상철 (MF) 가시와

7.김태영 (DF) 전남

8.최태욱 (MF) 안양

9.설기현 (FW) 안더레흐트

10.이영표 (MF) 안양

11.최용수 (FW) 이치하라

12.김병지 (GK) 포항

13.이을용 (MF) 부천

14.이천수 (MF) 울산

15.이민성 (DF) 부산

16.차두리 (FW) 고려대

17.윤정환 (MF) 세레소오사카

18.황선홍 (FW) 가시와

19.안정환 (FW) 페루자

20.홍명보 (DF) 포항

21.박지성 (MF) 교토

22.송종국 (MF) 부산

23.최은성 (GK) 대전


물론 이 때 당시 유럽파 선수들이 적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시 호주와 일본에서 뛰고 있는 선수도 꽤 됐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K리그가 우월한 실력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만 일본 몇몇 팀의 물량공세에는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핵심 선수를 지켜내기에는 자금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차두리다. 유일한 대학생 신분으로 엔트리에 합류한 차두리는 팬들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 시켜주기도 했다.)

그럼 여기서 당시 국가대표팀의 주 포메이션을 살펴보면 이운재 골키퍼를 시작으로 부동의 3백 김태영, 홍명보, 최진철, 이영표, 김남일, 유상철, 송종국, 설기현, 안정환, 박지성까지 3-4-3의 전술을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여기서 당시 해외파는 안정환(페루자), 박지성(교토), 설기현(안더레흐트), 유상철(가시와)까지 네명의 선수가 유일했다. 총 11명의 선수 중에서 공격수 3명과 중원에 유상철이 전부였다. 

물론 히딩크가 당시 선수들에게 요구했던 것은 강인한 체력 조건이었다. 그러다보니 선수 개인 기량보다는 하드웨어적인 면을 많이 체크했고, 신구의 조화를 위해 오랜 국제 경험이 있는 선수들도 주요 포지션별로 뽑았다. 그리고 그 선수들이 바로 황선홍, 홍명보, 유상철로 대표된다. 그들은 공격, 중원, 수비로 세분화되서 조화를 이루어내기에 충분했다. 그 뒤 안정환은 황선홍과 번갈아 출전하는 횟수가 많았고, 박지성은 이천수와 번갈아 출전하곤 했다. 게다가 히딩크는 첫 경기인 폴란드 전에서는 경험이 많은 선수들을 위주로 출전시키며 부담감을 최소화하고 젊은 선수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려 했고, 그것은 바로 황선홍과 유상철의 발 끝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강팀과 상대할 때는 젊은 피를 수혈해주며 과감함을 심어주고 충성도 높은 플레이를 요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새로운 얼굴들이 대거 등장했던 월드컵 무대이기도 했다.

더 이상의 비교는 불필요하다
지금은 훨씬 많은 선수들이 해외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박지성을 필두로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 차두리, 손흥민 등 다양한 포지션의 선수들이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하며 2002년 당시보다 훨씬 막강한 스쿼드를 구축할 수 있게끔 해주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집고 넘어갈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나라 선수들의 실력이 당시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축구 실력을 검증할 길이 없기에 스카우터들도 적게 올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유니폼 팔기' 형식이었을지라도 우리보다 훨씬 못한 실력을 가진 중국의 축구선수들이 빅리그의 강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었다는 점이 바로 그 예이다.

그럼 지금 현재로 돌아와서 다시 이야기를 끌어가보도록 하자. 사실 과거는 아무리 들춰내도 정확한 판단은 내릴 수 없다. 마치 펠레와 마라도나를 비교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필자는 국가대표팀이라는 무대 자체가 어떤 선수 개인의 기량을 입증할 수 있는 무대가 되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소속팀에서 확실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가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줄곧 생각해와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역시 어떠한 결과물을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운영되는 곳이다. 절대 선수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유럽 명문팀 벤치멤버와 K리그 주전멤버랑 동급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물론 급을 메긴다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겠지만 유럽 명문팀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가 그만큼 그 '무엇'인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역시 가능성이지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 2002년은 앞서 말했듯 실험적인 경기들도 많았고,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둬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존재했다. 그러다보니 K리그 구단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축구협회의 강력한 밀어주기 효과가 공존했다. 이는 당연히 왠만한 클럽팀만큼의 조직력을 보여주기엔 충분했고, 그 효과는 천천히 나타났고 결국 2002년 성공 신화로 팬들에게 보답했다.

팬들이 추천하고, 감독이 찾아가는 서비스?
사실 감독이 원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겠지만 우선 자신이 속한 소속팀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 확실한 자신의 실력을 계속해서 검증해 나가야만 한다. '벤치 워머'는 검증할 길이 없다. 그저 명함만 보고 결정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인정해주어야겠지만,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조명을 받지 못한 K리그의 선수들도 꽤 많다. 단적인 예로 또 다시 2002년으로 돌아가자면 2002 월드컵 이후 세계무대를 통해 검증받은 선수들이 속속 해외로 진출했고, 핵심 선수들의 대부분이 해외 명문 구단으로의 이적설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이는 즉 K리그에 유럽팀 스카우터들이 파견되지 않는 한 실제로 유럽무대로 진출하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 무대는 국가대표팀에 뽑혀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 진가를 발휘해야한다는 조금은 어려운 길도, 직접 찾아가 계속해서 테스트를 받아 합격점을 받는 고속도로도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리스크를 안고 도전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는 어디 소속이니까 당연히 K리거보단 훨씬 잘하는 거야. 라고 섣불리 판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이 유럽 선수들과 유럽 특유의 경기 전개 방식은 익숙할 것이고 그 자신감에서 나오는 플레이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코 앞에 두고 있는 상대팀은 쿠웨이트이다. 결국 위의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말대로라면 지금은 아시아 무대에 익숙한 선수가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단순히 K리그니까 못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선수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부터 우리 축구 선수들을 울타리 안에 가두고 있는데, 많은 선수들이 해외에서 활약해주길 기대하는 것인가? 분명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지만 선수들의 기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좋은 실력을 보이고 있다. 이제 2002년 4강의 전사들이 속속 K리그로 복귀하거나 은퇴의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고 2002년의 환상에 젖어 선수들의 앞 길을 막을 순 없다. 오는 29일 쿠웨이트를 철저히 짓밟고 2014년 브라질行 티켓을 거머쥐고 재정비하는 날까지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내부의 논란이 아닌 어깨에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는 선수와 감독에 대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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